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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성 시인 / 연애시

by 파스칼바이런 2020. 12. 30.

이기성 시인 / 연애시

 

 

  뱀을 보는 순간이 있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던 거야. 그때 너의 얼굴 말이야

  커다란 몸과 알 수 없는 혀를 가지고

  목구멍을 꽉 메우고 있는

  하얀 침묵의 덩어리

 

  믿을 수 없어

  눈을 깜박이는 순간이 있어

  거울의 틈새에서 부는 휘파람처럼

 

  뱀을 보는 순간이 있어

 

  자정의 희고 긴 팔이 불쑥 튀어나와

  백지 위에서 구불거리는

  검은 뱀을 찢는 순간이

 

  연애시를 쓰는 순간이 있어

  어떤 고요를 향해 더듬거리며 다가가는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이기성 시인

1966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98년 《문학과사회》에 〈지하도 입구에서〉등을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불쑥 내민 손』(문학과지성사, 2004)과 『타일의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2010) 그리고 평론집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소명출판, 2009) 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