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란 시인 / 이동하는 모래
손가락 사이로 자정이 빠져나가고 허허벌판에 우두커니 모래
모래의 성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너의 그림자 그림자를 씻어 주면서 끝없이 배반하는 주먹들
그림자를 빼가도 괜찮겠어 모래는 속삭임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건 발목에 숨긴 태양이 너무 뜨겁고 무릎 속에 고인 시간은 너무 차가워
숨겨 놓은 태양을 파헤치려 파도의 바람의 말발굽의 트랙, 트랙을 달리다 뒤집힌 파도에서 빠져나온 아직 만져보지 않은 하늘 무덤
발뒤꿈치를 바꿔 치기 위해 모래를 털 때
모래는 이미 멀리서 걸어온 저녁의 무릎을 파묻고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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