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영 시인 / 흠
당신이 말할 때 역광이 머리카락을 기웃거렸지 말에서 나온 빛은 울림이 되고 몇 개의 단어가 내 안에 들어왔지
그 때 어둠의 메두사를 머리에 얹고 있었다면 상념 없이 달려가 담홍색 파스텔로 칠해 버렸다면 폭설이 내린 길가, 페가수스가 시커멓게 녹아 흘렀다면 그 말이 뿜어낸 빛이 빙판에 울려 퍼져 거리의 CAFE라는 간판이 GAME으로 보이고 내 입에서 날개 달린 말이 튕겨 나왔다면
당신이 나를 향해 움직이던 거리는 머리카락의 십 만분의 일, 1미터의 십 억분의 일쯤 되는지 내 안에 1나노미터의 흠집으로 새겨져 차디찬 맨홀 뚜껑이 열리고 해쓱해진 나뭇가지가 꺾여 날아가고 휘어진 산이 송두리째 얼굴을 덮쳐 오는 꿈을 꾼다
저지르고 싶었으나 저지르지 못한 말이 시간을 얇게 썰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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