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점 시인 / 파문, 파문
몸에 매달려 수런거리던 나무의 혀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아무쪼록 그 집을 지워야겠다 크기가 다른 붉은 새알들 빚어 놓고 깔깔거리며 구르던 오후를 잊어야겠다 잘 익은 석류처럼 서로를 열어 보이던 환한 대낮의 햇살과 바람도 잊어야겠다
야생마로 벌판을 달리고 싶다던 꿈은 이루어졌니? 분홍 잠바를 입고 소풍 가고 싶다던 철모르던 아득한 눈빛은 그곳에 도착했을까?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꺽꺽거리던 벙어리의 시간, 똑같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결혼식장으로 울다가 웃다가 다시 오지 않을 11월은 길기만 한데
산의 정상에서 어깨 위 배낭 벗으려 할 때, 나무들 헤집고 헐레벌떡 달려온 조종(弔鐘) 소리 댕 댕 댕……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전화가 툭 끊어진 뒤의 일이다
문득 눈길을 잡아끄는, 흘러나와 혀처럼 굳어 버린 얼음 한 덩이, 못 보던 길 하나가 만들어졌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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