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환 시인 / 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홍은동 산 1번지 무허가 블록 집으로 묵직한 달빛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김관식이 들어가고 신경림이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오던 긴 그림자 하나 담벼락에 붙어있다
가난한 시인의 집 마당 술 취한 발자국들을 시인의 아내가 거둬들이고 시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슬픔도 거둬들이고
김관식에 이끌려 조지훈과 미당 댁에 세배 다녔다는 함박눈을 비틀비틀 밟으며 자정 넘어 들렀어도 큰 술 또 꺼내놓던 미당의 환호작약!
큰 대자로 김관식은 숙면에 들고 미당의 술자리는 더 길어지고
무명 이불을 덮어주듯 함박눈 내리던 날이었다 시간 저 편의 아내에게 머리를 누인 듯 신경림 선생의 추억은 행복하고 또 슬프다 함박눈은 오늘도 가난한 아내와 살던 산 1번지를 덮고 또 덮고 있으리라
함박눈처럼 다 흩어지고 또 남겨진 것들
“오백 하나 더!” “오백 하나 더!”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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