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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세환 시인 / 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by 파스칼바이런 2020. 12. 31.

강세환 시인 / 정릉 명호 호프집에서

 

 

  홍은동 산 1번지 무허가 블록 집으로

  묵직한 달빛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김관식이 들어가고

  신경림이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오던 긴 그림자 하나 담벼락에 붙어있다

 

  가난한 시인의 집 마당 술 취한 발자국들을

  시인의 아내가 거둬들이고

  시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슬픔도 거둬들이고

 

  김관식에 이끌려

  조지훈과 미당 댁에 세배 다녔다는

  함박눈을 비틀비틀 밟으며

  자정 넘어 들렀어도

  큰 술 또 꺼내놓던 미당의 환호작약!

 

  큰 대자로 김관식은 숙면에 들고

  미당의 술자리는 더 길어지고

 

  무명 이불을 덮어주듯 함박눈 내리던 날이었다

  시간 저 편의 아내에게 머리를 누인 듯

  신경림 선생의 추억은 행복하고 또 슬프다

  함박눈은 오늘도

  가난한 아내와 살던 산 1번지를 덮고 또 덮고 있으리라

 

  함박눈처럼

  다 흩어지고 또 남겨진 것들

 

  “오백 하나 더!”

  “오백 하나 더!”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강세환 시인

1956년 강원도 주문진서 출생. 관동대 국어교육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8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벚꽃의 침묵』 등이 있음. 서울 혜성여고 교사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