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라 시인 / 한라봉
마고할미 밤새 짜디짠 울음 울고 목뼈 한 도막 허공에 깊숙이 걸어두었네
새벽 능선 그 아래 갈증으로 부풀어 오는 한 점 붉은 기운 점점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라
가물가물 깃대 하나 꽂힌 그곳에서부터 봄 보리밭은 종일 고랑을 지어 흘러내리고 하얗게 쇤 길을 태풍의 먼 끝자락으로 불려가는 나뭇잎처럼 할미가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네
넘칠듯 한 잔 가득 찼던 제주산 귤 음료 유리잔 하늘 끝에서 끝까지 구름을 뿌려 얹어 아슬아슬 드디어 저녁에 닿아 서쪽 창에 엎질러졌네
흘러내린 시간들 남쪽 창가에 남천 두 그루 잎잎이 붉게 물들 동안 머나먼 변방 녹슨 철교 위로 기차소리 잠시 지나갔을까
엎질러진 음료 얼룩진 오늘이 흘러 가고나면 갈증 한 모금으로 내일은 또 부풀어 올 것이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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