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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도복희 시인 / 환절기를 경유하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 2.

도복희 시인 / 환절기를 경유하다

 

 

  집 나온 고양이가 종점으로 모이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도 그 간이역에서 하차하곤 했다

 

  그리고 겨울이 와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막다른 종점의 고양이들은

  윤기 잃은 털 대신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밤이 스며드는 외곽은 안개가 짐승처럼 기어다녔다

 

  낡은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갔다, 호흡이 불편했다

 

  출렁출렁 개천 옆으로 바람을 뒤집어 쓴 버드나무

  물살의 모서리만 만지다 돌아왔다

 

  번뜩이는 고양이의 눈을 빌려 와

  수시로 외곽을 탐독하는 사이 몇 번의 환절기가 지나갔다

 

  떠나간 사람의 뻔한 연하장을 버리지 못하는 계절마다

  뭉텅뭉텅 어둠에 베어 먹힌 안개가 자랐다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2월호 발표

 

 


 

도복희 시인

충남 부여에서 출생. 2009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2010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1년 문학사상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