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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경 시인 / 의빙(疑氷)*
나는 칼을 믿는데 칼은 나를 믿지 않나봐
등을 내게로 향한 칼이 정직함을 강조하고 있어
누군가의 심장을 썰어 팔팔 끓는 물에 넣을 생각일지도 몰라
내 손가락에 갑자기 오한이 들었어
저 팔딱이던 몽상이 눈동자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잖아
칼날 속에 살고 있는 파란만장도 지금 이 순간을 조금씩 조금씩 삼키고 있어
진정 칼이 판독하려는 무늬는 무엇일까
도마에 도착하지 못한 비명들이 내 정수리 안쪽까지 다가와
칼의 움직임보다 노련하게 나를 흥분하게 해
나는 리듬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손목과 어깨를 같은 속도로
흔들어 보지만 그것이 발작을 잡지는 못할 거야
칼날 끝에서 흐르는 물컹한 감정은 나의 것일까 너의 것일까
살과 살 사이에서 칼은 무슨 증거를 찾고 있는 걸까
붉게 흐르던 우여곡절이 이제는 도마 위에서 시들어 가고 있어 * 풀리지 않는 의심 덩어리 —격월간《시사사》2017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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