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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광식 시인 / 추적당하는 고래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

고광식 시인 / 추적당하는 고래

 

 

물건을 배달하러 가는 고래의 등에

무인감시카메라가 작살을 꽂는다

 

120도 아니고 100은 더더욱 아닌 시속 78km에

작살을 맞은 고래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헤엄쳐간다

 

다리가 퇴화한 지느러미로 달아나다 보면

어느덧 둥근 바닷가에 선다

막다른 곳에서 고래는

퇴화하지 못한 자신의 다리를 본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바다로 들어가던 고래,

누워있는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되돌아 나온다

 

늘 물건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길 뒤에서

핸드폰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사장과

 

난파선 안, 위태로운 모습으로 고래를 바라보는 가족이

왕복 2차선 도로의 제한속도 60km의 길로 숨어든다

 

달려가는 꿈을 좇아 카메라가 움직이며

작살을 쏜다, 쏜다, 쏜다

가는 길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알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퇴화한 뒷다리 같아서

단단하게 포장된 물건을 흔들어본다

 

좁아진 차선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무인감시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고래의 등이 시려 온다

 

 


 

 

고광식 시인 / 오징어의 전언(傳言)

 

 

바다의 텃밭에서

거친 파돗살 먹은 우리가

건어물집 향기로운 풍경 위에

한 축, 두 축,

접목된 바다로 누워 있으면

이따금씩 일어나는 해조음에도

메마른 눈동자들이

낯익은 물풀 기러기 울음 한데 모아

꿈의 가슴앓이

죽지 않는 불가사리의 그리움으로

리어카 바퀴에 실린 채

등뼈로 몸 곧추세우는 꿈꾸며

도시의 끝 골목으로 밀려나고,

밀려난 등뼈의 허전한 자리

물풀들의 손짓으로 물어뜯는

수평의 등가죽 달라붙은 살만이

소금기 마른 몸짓으로 남아

촉촉한 혀 휘감아

도시의 끝 돌고 나면

나는 플랑크톤 무성한 바다로 갈 수 있을까

좌판 위로 낯선 행인들의

겨울 바람으로 돌아가는 어금니 붙들고

아득히 꿈의 귀 기울여 본다.  

 

 


 

 

고광식 시인 / 구름 이식 수술

-감정노동자 J에게

 

 

오늘은 녹아내린 얼굴에 새털구름을 이식하는 날

 

이식편을 양쪽 뺨에 그물처럼 늘려놓으면

구름 보조개가 혓바닥을 끊임없이 빨아들일 거야

 

흙탕물은 피부를 자극하며 어디로든 흘러갈 거야

 

구름 입자 하나씩 이식하는

손가락마다 묻어나는 물방울들

 

실내 온도와 조명 각도 때문에

사람들의 욕설도 녹아내릴 거로 생각해

 

표정은

봉합술로 하얗게 빛나고

가슴은

그늘져 어둡고

 

막장 드라마 화면으로 들어가던 순간

뺨은 모두 녹아내린 거야

각종 구름이 날아다니는 저녁

맨홀처럼 둥글게 열상 입은 붉은 노을을 벗겨내야지

 

이제 혓바닥이 수직으로 발달하여

성층권을 넘는다 해도 두렵지 않아

 

구름은 진피조직을 자극하며 차오르고

구름 보조개가

거리의 혓바닥을 재배열할 테니까

 

 


 

고광식 시인. 평론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 1990년 《민족과 문학》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추계예술대 출강, 시집으로 『외계 행성 사과밭』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