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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탁경자 시인 / 불면증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1.

탁경자 시인 / 불면증

 

 

누군가 나에게 물었네

거미줄처럼 감겨져 있는 어둔 시간을

어떻게 풀고 왔냐고

심해의 어둔 바다 속을

어떻게 헤엄치며 왔냐고 묻는 것만 같았네

 

소금에 절인 바닷물을 마시고 사는

나는 물고기였다네

 

비릿한 밤을 유영하듯 붙잡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비늘로 감싸 안은 채

얼룩진 깊은 바다 속

그 안에서

밤새,

눈물도 없이 눈을 뜨고 있는

 

 


 

 

탁경자 시인 / 틈

 

 

재건축 아파트를 지나오는데

한 몸처럼 붙어 있던 시멘트벽에서

틈 벌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삐걱거림이 빠져나와 웅웅거린다

오래된 뼈대들 서로 붙들고 있다가

지친 듯 심 밀어내고 있다

한 순간이 무너질 것 같은

허공을 붙들고 있는 위태로운 그림자와

우편함에 꽂힌 빛바랜 고지서들

수취인불명의 편지들이 어둠으로 왔다가며

무수히 긁어댄 상처가

낡은 담 사이를 넘어 간다

등 맞대고 함께 산다는 것은

거미줄처럼 그어진 틈 사이를 붙잡고

서로 바라보는 것일까

늦은 햇살이 틈으로 스며드는

재건축 아파트의 오후

틈에서 고개를 내민 민들레가

가난을 꽃피우고 있다

갈라진 상처를 다독이고 있다.

 

 


 

 

탁경자 시인 / 못

 

 

달빛이 물 표면을 밤새 훑는다

윤슬에 찔린 연못이

신음을 내며 앓는 달밤

가끔씩 달빛으로 찾아와

연못에 못질을 하고

족적도 없이 사라지는 찰나만

밤바람에게 들통난다

고통의 덩어리가 모이면

연못은 만들어 진다

제 상처를 조용히 닦으며

물의 안쪽으로 서서히 파고든다

망치가 와 닿을 때마다

물무늬의 유전자처럼

파문을 치며 울고 싶은 못

나무의 나이테를 닮은

못의 몸부림들

못의 울음이 밤새도록

물 표면에 떠 있다.

 

 


 

탁경자 시인

2017 <애지>에 「거푸집」, 「아버지의 강」, 「못」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