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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이랑 시인 / 청도역 농기구박물관에 가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1.

정이랑 시인 / 청도역 농기구박물관에 가다

 

 

초가지붕 위에 간신히 올라간 호박꽃들

두 레일의 울음소리 게워낼 무렵

다시 돌아오고 싶어 떠나는 것일까

물레, 풍로, 망태기……

그들은 가끔 행인의 길들을 묶어놓고

햇살 눈부신 한때 얼굴씻곤 하는데

엎어져 울고 있는 강같은 나의 뒷모습

길 만들며 가는 바람에게 던져주랴

제 몫의 무게 보따리 내려놓듯

풀어버리는 날, 어느 곳에서

꽃뱀처럼 또아릴 틀고 앉아

동아줄로 꼬아온 사연을 풀까

오늘은 깃털 하나로 뽑혀지고 싶다

비어 있는 그 자리 한움큼 햇살 퍼담으며

산의 가슴 아래 머리 기대고 잠드는 갈대잎들

낮밤 그들처럼

호루라기소리 불어대는 역무원 곁에서

달려오는 시간 북북 찢으며

나의 우중충한 영혼 넘겨주고 싶었던 거야

 

 


 

정이랑 시인

본명 정은희.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황금알, 2005)와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문학의전당, 2011)이 있음. 현재 '사림시', '시원'  동인으로 활동. 한국시인협회 회원. 1997년  「한국여성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의 해「불교문학상」 시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