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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현숙 시인 / 꽃들은 죽으려고 피어난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1.

손현숙 시인 / 꽃들은 죽으려고 피어난다

 

 

잠을 잔다

가벼운 눈꺼풀 위로 꿈을 불러

있는 힘껏 손과 발 털면서 도망친다

누워서 바라보는 세상은 기울어졌다

벌곃게 솟구치는,

꽃들은 무얼 찾아 오늘까지 왔을까?

가벼워지고 싶은 날,

죽은 듯이 모로 누워

자고 또 자고, 깊이 잠들어서

내 속에 잠을 몽땅 비워버린다면

그래서, 그런다면, 혹시,

알 수 없는 그곳에서도 나는

말짱하게 되살아나

내가 다시 비워져서

그림자처럼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육신이 훅, 하고 해방되는 날

나는 정말 슬프지 않아도 되는 걸까,

꿈은 땅 속으로 머리를 풀고

생각은 생각이 없는 곳으로

까맣게 꼬리를 끌어도,

 

 


 

 

손현숙 시인 / 담쟁이

 

 

온몸으로 너를 더듬어서

변변한 꽃 한번 피워내지 못했지만

상처 많은 내 가슴

내 손으로 만지면서

담장 끝

너를 보듬어 오르다 보면

그때마다

사랑이니 뭐니

그런 것은 몰라도

몸으로 몸의 길을 열다 보면

알 길 없던 너의 마음

알 것도 같아

캄캄했던 이 세상

살고 싶기도 하다

 

 


 

손현숙 시인

1959년 서울에서 출생. 신구대학 사진과와 한국예술 신학대학 문창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1999년 《현대시학》에 시 <꽃들은 죽으려고 피어난다>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너를 훔친다』(문학사상사, 2002)와 『손』(문학세계사, 2011)가 있음. '국풍' 사진공모 수상,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  수상. 2002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