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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차의갑 시인 / 바지락 나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1.

차의갑 시인 / 바지락 나비

 

 

푸지게 소문난 바지락칼국수집 앞에서

쭉 늘어선 미식가들의 꼬리를 잡았다

서로가 질긴 명줄에 연연운운하듯

호명의 번호에 따라 식탁의 자리에 앉았다

 

뜸지근한 푸대접에 담아온 면발 사이사이

또렷또렷 살아난 바지락 나비들을 본다

지난하고 캄캄했던 갯벌 밑바닥 더듬던

 

억척의 생, 나직이 내려놓은 영혼들

시원스레 뽀얀 국물 토해놓은 채

제 어둠을 밝히듯 속내를 내보인다

바즈락바즈락 젓가락에 닿는 나비들의 파동

 

활짝 펼친 조가비들의 마지막 몸짓인가

저마다 푸대접 박차고 날아올라

급기야 우주표 빈 접시에 날개를 접었다

 

 


 

 

차의갑 시인 / 폐차

 

 

제가끔 어울려 나들이 가던 오솔길인데 개발의 힘에 밀려 아스팔트가 바닥을 쳤다 끊임없이 뿜어내는 매연에 초점이 흩어진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다 전조등에 반사된 길 잃은 자국들이 허다하다, 울컥울컥 가속의 중력에 부대낀 흔적들로 여기저기 겁에 패인 노면을 더듬어 본다 그 누구의 허튼 조작에 일그러진 난장판인가 찌그러진 구두와 빛나던 헤드라이트, 배지 붙은 모자와 안락의자들이 산산이 조각나 휘둥그렇다 감히 핏기 도는 살점들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에 애매모호한 오명의 덫이 씌워졌다 그들을 대신하여 폐차장에 끌려갔다던데 이글이글 녹아내리는 절단기의 화염에 온몸이 분해되었다 타다 남은 몇 개의 유골은 검은 기름에 방부 처리하여 중고품의 이명을 달고 베일의 창고에 영치했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소름 돋는 마찰음이 귀에 쟁쟁하다 유언의 빗발이 풍문에 풍문을 열고 불씨로 날리는 밤거리, 마력과 부를 겸비한 개조와 개발의 차들이 골목을 에워싸다가 급기야 폐차장 화장실에 들어서는가 한 가닥 희미한 연기로 소실될 동력들인가 거리에서 환대받지 못해 흐르는 불의 농을 보았다

 

 


 

 

차의갑 시인 / 지퍼

 

 

그대를 만나러 가는 푸르른 설레임으로

비키니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 입다가

금간 거울 앞에서 어긋난 옷자락의 매무새에 놀란다

 

허둥지둥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는

잘못 꿰인 지퍼의 아귀를 싹뚝 잘라낸다

그 흔적 위에 새로운 지퍼와

오래된 생가의 깃을 뭉뚱그려 박음질한다

 

단 한 번의 칠흑 같은 기억으로

제 아귀 짚어내는 빈틈 없는 여유라면

스스로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이라도 달겠다

 

무시로 창문에 스며드는 비린내 따라

그대가 울컥울컥 생각날 때

자르르 그대가 남겨놓은 검은 가방을 열고

아련한 기억 떠올리며 열차에 오르리라

 

주르륵 미끄러지며 열차가 지퍼를 올리듯

레일의 재봉선을 따라 광속으로 달리면

종내는 만남의 정점에서 기적을 울릴 수 있겠다

 

 


 

차의갑 시인

대전에서 출생. 2010년 《시에티카》로 등단. 수레바퀴문학회 회원. 대전작가회의 회원. 시집 『바지락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