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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시인 / 무소유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글자 조합이 잘못된 낱말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잃을 것은 사슬뿐인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떨쳐 일어날 거라지만 그들도 잃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거지는 동냥 구역을 잃을 게 있지 없을수록 집착할 수밖에
거액의 자산가가 방송에 나와 무소유의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할 때 그건 진심이었을 거다 무소유의 청빈함을 제대로 글로 쓰는 작가는 좀 살 만한 작가다 어디 가나 밥과 집이 넉넉한 스님이라야 무소유를 제대로 설법할 수 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백무산 시인 / 빈집
빈집을 보면 사람들이 쑤군거리지 사람 떠난 집은 금방 허물어지거든 멀쩡하다가도 비워두면 곧 기울어지지 그건 말이야 사람이 독해서야
벽과 기둥을 파먹는 것들 돌을 갉아먹는 이빨 날카로운 시간들 사람 사는 걸 보면 질려 달아나지 삶이 독해서야 그건
그랬지 내가 허물어지던 때마다 내게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였지 그땐 나를 구원하러 온 것마저 나를 허물었지 타인의 욕망이 나를 버티게 하는 나의 욕망에 대해 무지했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이념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풍요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이상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삶의 하찮은 몸짓들 하찮은 욕망들 하찮은 구원들 그 비루하고 모진 기득권들이 빠져나가면 곧 허물어지지
나는 집을 떠나려고만 했지 수십 년째 집을 떠나려고만 했지 굼벵이처럼 비루한 것이 싫어서 그랬고 슬퍼서 그렇게 하지 못했지 사람의 모진 것들이 자꾸 슬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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