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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공광규 시인 / 모과꽃잎 화문석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30.

공광규 시인 / 모과꽃잎 화문석

 

 

대밭 그림자가 비질하는

깨끗한 마당에

바람이 연분홍 모과꽃잎 화문석을 짜고 있다

 

가는귀가 먹은 친구 홀어머니가 쑥차를 내오는데

손톱에 다정이 쑥물 들어

마음도 화문석이다

 

당산나무 가지를 두드려대는 딱따구리 소리와

꾀꼬리 휘파람 소리가

화문석 위에서 놀고 있다.

 

 


 

 

공광규 시인 / 애장터

 

 

입을 꾹 다문 아버지는

죽은 동생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앞산 돌밭에 가 당신의 가슴을 아주 눌러놓고 오고

 

실성한 어머니는 며칠 밤낮을

구욱구욱 울며 마을 논밭을 맨발로 쏘다녔다

 

비가 오는 날마다

누군가 밖에서 구욱구욱 젖을 구걸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누구유!” 하며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그때마다 산비둘기 몇 마리가

뭐라고 뭐라고

 

젖은 마당에 상형문자를 찍어놓고 돌밭으로 날아갔다

 

어머니가 그걸 읽고 돌밭으로 가면

도라지꽃이 물방울을 매달고 서럽게 피어 있었다.

 

 


 

 

공광규 시인 / 말똥 한 덩이

 

 

청계천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 놓았다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말똥이 퍼져 멀리 멀리 뻗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 조각들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어가고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공광규 시인 / 압록 저녁

 

 

강바닥에서 솟은 바위들이 오리처럼 떠서

황홀한 물별을 주워 먹는 저녁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 강도 저와 닮아

속마음과 겉 표정이 따로 노나 봅니다

 

강심은 대밭이 휜 쪽으로 흐르는 것이 분명한데

수면은 갈대가 휜 쪽으로 주름을 잡고 있습니다

 

대밭을 파랗게 적신 강물이 저녁 물별을 퍼 올려

감나무에 빨간 감을 전등처럼 매다는 압록

 

보성강이 섬진강 옆구리에 몸을 합치듯

그대와 몸을 합치러 가출해야겠습니다.

 

 


 

공광규 시인

1960년 서울 돈암동 출생, 충남 청양에서 성장.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과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그리고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가 있음.  1회 신라문학대상과 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수상.현대불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