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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 시인 / 목 속에서 나비는 노랠 부르고
우린 푸른 지문으로 죄를 많이 낳았지 손에 친구親口하고 잠이 오길 기다리는데
아무렇지 않게 길어지는 혀, 아무렇지 않게 파닥이는 입술, 아무렇지 않게 꿈틀거리는 머리카락,
바람이 날개를 핥아줄 때 긴 터널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움직여 눈 맞추지 말고, 눈감지 말고, 꿈꾸지 말고
(내 날개는 날기 위한 게 아니에요)
실종된 시간을 찾기 위해 달아나려는 나비의 미소는 마치 신기루처럼 잔인하고 아픈 밤 태엽 감아가듯 페달을 밟는 박자들 거꾸로 돌아 제자리로 왈칵 쏟아지네
(우리의 첫음절을 기억해주세요)
서늘한 가지 끝에 영혼을 매달아 모두 같은 대상을 다르게 부르면, 그리면, 어둠에 등을 돌려대고 불량한 것들이 안심 된다 했어 나무였는지 당신이었는지 알몸으로 찾아와 옆집 사는 개들도 잠든 시간에 서로를 떠나보내기 위해 종횡縱橫으로 음표를 그려 넣고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갤 돌리면 노래를 멈춘 나비가 자장자장 퉁퉁 부은 얼굴로 자장자장 눈알 같은 알약으로 자장자장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성은주 시인 /소멸하지 않고 서성거리는
가위는 연필보다 한층 감각적이다 —앙리 마티스
빳빳한 종이에 글씨를 쓴다 하얀 꽃 피면 사각거리는 목소리로 그대가 올 것만 같아서
우리 사이에 놓인 공기를 펼쳐 온몸에 이름을 새겨 넣고 싶었다 눈코입이 지워지지 않도록 진공 포장해 썩지 않을 푸릇한 이름을 말이다
종이 모퉁이에 숨어 있는 널 부재라 하자
오색달팽이 껍질에 휘도는 다정한 무늬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위를 보면 위에서 아래를 보면 아래에서 방향을 바꾸면 네 위치도 함께 변하는 조각조각 흐르는 소릴 아직 난 듣고 있다
그댄 내가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걸고 싶은 그림이다
계절을 풀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종이꽃 대각선으로 걷다가 다시 이마를 짚어야 했다 꽃잎은 네 부드러운 살결을 닮아서 물기 찬 이파리마저 오려 오고 싶었다
—《시인수첩》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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