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두예 시인 / 눈 덮인 새벽을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4.

이두예 시인 / 눈 덮인 새벽을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

남기지 않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는 것 보다

 

하물며 우리

지옥문 쉬이 들어서는 바람 한 자락에게도 감추기 어려울 바에는

차라리 천국의 문

낙타가 되어 걸을까

 

저녁 해가 산 아래로 떨어지는

찰나에게 미안

눈이 부셔 눈을 감는

흰색에게 미안

흰 눈이 내린다고 문자를 보내다가

휜 눈이 내린다고 오타를 보내버린 실수처럼

휘어진 오른 손에게 미안

딛는 땅을 흙색이라고 대못질한

그 땅에 그림자 드리운 가난한 심장이여 미안

들판을 헤매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들꽃에게

이름 모를 꽃이라고 말한 것 미안해

이 새벽,

순박한 눈밭에

때 묻은 발자국 남기며 지나가서 미안

미안이라고 말해서 미안 미안

 

 


 

이두예 시인

2008년 시집《늪》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외면하는 여자와 눈을 맞추다』와 『언젠가 목요일』「스틸 컷」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