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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정 시인 / 입술의 문자
입술의 주름으로 결별한 이름을 기록하는 시간
산발한 걸인이 되어 우리는 머리칼이 끌고가는 바람의 문자를 해독했던 것이다
살갗과 살갗이 스쳐 만든 인장(印章)은 문자가 없는 페이지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마침내 바닥에 목을 누인 기린의 긴 혀처럼 우리는 서로의 경전을 천천히 쓸어내렸던 것이다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수면에 얼굴을 묻고 입술이 뿔나팔이 될 때까지 머나먼 입술을 향해 입술을 움직일 때
물살을 문 입가에 되돌아와 겹쳐지는 입술의 무늬
우리는 각자의 입술을 만지며 붉게 물들었던 것이다
한세정 시인 / 장미의 진화
붉은 주먹을 내밀며 넝쿨은 전진한다
꽃잎 속에 꽃잎이 쌓이며 최초의 꽃이 완성되었듯이 우리로부터 진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부둥켜안고 심장을 향해 탄환을
최초의 연인이 그러했듯이 최초의 적이 그러했듯이 입술을 물어뜯으며 장미가 피어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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