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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서일 시인 / 하늘을 날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7.

강서일 시인 / 하늘을 날다

 

 

 작다고 다 가볍지 않다.

 

 금은 금고보다 무겁고

 의심은 때로 지구보다 무거운 법.

 

 오직 새들만이 뼛속까지 비어

 푸른 바다에 밤 좌표를 만들고

 어둔 밤 인도기러기는

 자신의 숨을 줄여 히말라야를 넘는다.

 

 작다고 다 가볍지는 않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독수리보다 더 멀리 난다 하니,

 저기 저,

 비어 있는 가을 하늘 좀 보아라!

 

 당신도 날아간다.

 

 


 

 

강서일 시인 / 집에서 집으로

 

 

오늘도 나는 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어제 묶인 구두끈 그대로의 구두를 신고

궤도 따라 움직이는 전철을 따라

하품을 하면서 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도 재미없는,

집에서 집으로가 인생목표이고 좌우명인 사람도 있다

집을 떠나 히말라야 만년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눈을 날리며

집에서 홀로 비박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그가

이번엔 집에서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탄식하지만

오늘도 나는 아스팔트를 염려하며

낮은 집에서 더 낮은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그의 비밀의 집을 모른다

인간의 방문을 사양하는 그의 옛집은

얼음이 반짝이는 진공의 저 높은 언덕,

흰 표범과 장미 한 송이 사는 그 곳,

오늘도 일출과 일몰을 맞으며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흰 등이 눈부시다.

 

*김창호 대장과 동료대원들을 추모합니다.

 

시집『고양이 액체설』2020. 문학아카데미

 

 


 

 

강서일 시인 / 횟집에서

 

 

사람들이 너나없이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횟집 주인은 연신 고깃머리를 내려친다

몇 년 전 해고문자 받았을 때

우리들의 머리는 누가 골랐을까?

주인은 뼈만 남기고 능숙하게 살을 발라낸다

이제 정말 큰일 하나 남았는데

누군가는 우리들처럼 선택을 고민하며

또 다른 어항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거무스레한 껍질이 벗겨지자 나무속같은

하얀 속살이 불빛에 반짝이고 예쁘게

해체된 몸통과 기름진 살들이 들어온다

어쨌거나 오늘밤은 술잔이 날아다니고

동해의 밤바람은 여기까지 밀려오니 우리들도

모처럼 석쇠처럼 붉게 달아올라 큰소리치며

어느 소국의 왕이 되어 한없는 자비를 베푼다

그리고 부두의 어둠이 바닷속처럼 깊어질 때

우리들도 점점, 한세상 지나치는 먼지가 된다.

 

시집 『카뮈의 헌사』2014. 책만드는집

 

 


 

강서일 시인

전남 여수 출생. 동국대 영문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과 졸업. 1991년《문학과 의식》 평론, 1991년 《자유문학》 시 등단. 시집 『쓸쓸한 칼국수』『사막을 추억함』『카뮈의 헌사』『고양이 액체설』번역서『비틀즈 시집』『대화의 신』 외 다수. 제5회 한올문학상, 제17회 자유문학상 수상. 여주대학교 실무영어과 겸임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