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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시인 / 내가 아주 어린 떡갈나무였을 때
내 앞에 조금 앞서서 걷고 있는 저 사람이 사라질 때쯤 사람의 집은 어두워지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겠다
땅에 떨어진 마른 잎들이 한없이 가볍게 바닥을 굴러간다
누가 이곳에 숲을 만들었을까 이 숲에 누가 아이를 낳아 사람의 도시를 세웠을까
오래 살던 사람들 사라지고 높은 곳에서 흘러 내려온 언덕도 사라지고 떡갈나무만 살아있다
떡갈나무의 내력은 어디에도 없다 힘겹게 겨울비가 내린다
밤 깊어, 그처럼 차가운 정자마루에 사람이 누워있다 한 사람 곁에 한 사람이 더해져 있는 형상
검은 외투를 벗어 뒤집어쓰고 있다 온 몸을 미처 다 덮지 못한 외투 속에서 삐져나와 있는 작고 고운 맨발
어린 맨발
가로등 불빛이 비에 다 젖는다
누가 이곳에 사람을 낳아 사람의 도시가 되었을까 떡갈나무는 그 내력을 알아 추운 겨울 저녁에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른다
어두워질수록 점점 밝아져 가는 나무들
누가 사람의 팔을 베고 나무의 잠을 자려 하는가
계간『시산맥』 2021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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