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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호승 시인 / 선암사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0.

정호승 시인 /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먼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꽃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 / 결빙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정호승 시인 / 창문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창문이

닫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열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데에 평생이 걸렸다

 

지금까지는

창문을 꼭 단아야만

밤이 오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열었기 때문에

밤하늘에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 창문을 연다

당신을 위해 창문을 열고

별을 바라본다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정호승(鄭浩承) 시인

1950년 경남 하동군 출생.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국문학석사)을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