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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승희 시인 / 내 이름 아시죠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9.

김승희 시인 / 내 이름 아시죠

 

 

내 이름 아시죠

눈보라 치는 언덕에 묻혀 있어요

이름 없는 구근(球根), 조마조마

두 눈을 감고

긴 겨울의 어둠 속에 알몸을 파묻고 숨만 쉬면서 죽은 듯이 있죠

내 이름 아시죠

 

이름은 천국의 뒤에 오고

생일은 지옥의 앞에 오죠

잠깐 현관에 멈춰서서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죽을까

그런 것만 고민하다 보면 가족도 친구도 잃어버리고

꽃병은 말 못할 파란 심장으로 가득 하죠

 

내 이름 아시죠

무덤을 열고 나와

흘러넘치는 수선화의 물결을 지나

아니, 아니, 아니요

누군가 골목에 내놓은 하얀 연탄재 구멍 속에

조마조마 샛노란 손을 꽂아 놓았죠, 내 이름 아시죠

 

계간 『미네르바』 2021년 여름호 발표

 

 


 

김승희 시인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와 同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 시집으로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 『달걀 속의 생』(1989) , 『냄비는 둥둥』(2006), 『희망이 외롭다』(2013), 『도미는 도마 위에서』(2017)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