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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순희 시인 / 오줌 누고 싶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9.

구순희 시인 / 오줌 누고 싶다

 

 

싱겁게 흘러가는 물 보면

내가 눈 오줌으로 세상 간맞추고 싶다

 

흐르는 시냇물 보면 졸졸졸

시냇물같이 흐르는 나는

계곡물 보면 콸콸콸 함께 흘러가며

물만 보면 목마르거나

마시고 싶다거나

당장 뛰어들어 목욕하고 싶지만

 

받아들이기보다 내보내는 게 먼저다

비워야 채워진다

그런 생각 대신 그냥 시원하게 내갈기고 싶다

 

첫눈에 반한 남자 앞에서도

가장 큰 바다 향해

푸른 오줌 실컷 누고 싶다

방금 눈 오줌 또 누고 싶다.

 

―{시작}(2004. 겨울)

 

 


 

 

구순희 시인 / 기다림

 

 

텃밭에 지천으로 핀 메밀꽃

그 앞에서 메밀묵과 부침을 먹었다

술잔은 자꾸 비고, 달밤에 소금 뿌린 듯

하얗게 피었다던 메밀꽃만 있고 달은 없었다

왜 그 밤에 엎어지며 낯선 그곳에 가야 했는지

달밤에 소금 뿌린 듯 메밀꽃은 밤에 만나야 했는지

그러나 올 시간이 됐는데도 달은 오지 않았다

처음 본 사람한테 달 보여 달라고 자꾸 졸라도

그는 이효석 생가만 지키고 달은 지키지 않고

달이 어떻게 넘어오겠느냐고, 산 보라고

산꼭대기에 해도 걸리고 장대도 걸리지만

저 높고 가파른 고개 쉽게 넘어오겠느냐고

불던 바람도 방향을 바꾸어 돌아가는 분지

그만 자러 가야 할 시간은 목을 꺾는데

달이 내려앉기엔 메밀꽃이 너무 눈부셔

멀리서 엎드린 채 메밀꽃만 바라보는지

메밀묵도 부침도 떨어지고 술잔도 넘어지고

메밀 익는 소리만 달을 앞질러 들려 왔다.

 

 


 

구순희 시인

1952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 1981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 내게로 와서』,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군사 우편』이 있음. 최근 『시산맥』 출판사의 『내려놓지마』를 출간.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 창작집 발간 지원금 수혜.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