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 / 백마강 햇살 아래
그녀가 왜 울었는지 모른다 부소산 그늘 아래 강물에 잠긴 흰 말의 잔등을 타고 날아오르던 은빛 물뱀들이 홀로 잠든 방문을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 밤은 없건만
그녀를 비우기 시작했던 것일까 그는, 살거죽을 비집으며 실한 광대뼈가 솟아오른 술잔을 홀짝홀짝 비우며 손으로 슬픔을 쓰다듬었다 얼핏 천년 정도의 순간을 건너온
달빛이 그녀를 회수해갔다며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창자를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지만 사내들은 너무 많이 안다 그녀의 혀가 금세 차가워지듯이
날카롭게 지워지듯이 그도, 나도 결국은 하나의 사과알 혹은 가을날에 슬슬 다시 차오르는 햇살이었다 춤추던 문자들을 미끼로 매달고 그래, 참, 오랜만에 누워보는
박관서 시인 / 나라가, 나라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네 나라가, 나라가 일어서서 나를 쫓아오는 꿈이었네 황당했네 나라가, 나라가 나를 죽이려하다니 도망가기는커녕 움직여지지도 않아 숨쉬기도 힘들었네 나라가, 나라가 나를 덮쳐 물에 빠진 두더지가 되어 빈지기 눈만 껌벅였네 가슴만 터질 듯 했네 나라가, 나라가 소리 없이 외치다가 꿈을 깨니 TV에 수장된 나라가, 나라가 먹물들의 붉은 혓바닥을 나부끼며 자꾸만 가라앉고 있었네 나라가,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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