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욱 시인 / 아홉 달
하늘을 찢었다. 가장자리가 없는 피부를 검지로 집어 가죽을 찢듯 절개했다. 검지가 떨릴 때마다 하늘은 푸드덕거리며 검은 티끌 같은 세포를 뿌렸다. 새는 그 알을 깨고 태어났다.
하늘의 속살은 무형이 가득했다. 망막 속으로 들어와 맹점에서 시체가 된다. 구리를 녹여 쇳물을 만든 뒤 벌어진 거푸집을 따라 흘려보냈다. 아무 것도 없던 그 곳에서 형태를 배우면 구리는 가지가 된다.
새들은 태양에 달군 인두를 지진다. 낙인의 걸음마다 잎이 되고 깃털은 기록이 된다.
하늘의 터진 양수에서 자귀나무 한 그루 자랐다.
- 열린시학 2015년 가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옥엽 시인 / SRY 유전자에 관한 단상 외 4편 (0) | 2021.10.12 |
---|---|
배성희 시인 / 니트의 딸 외 2편 (0) | 2021.10.12 |
전주호 시인 / 겨울 자작나무 외 4편 (0) | 2021.10.12 |
맹문재 시인 / 아름다운 얼굴 외 4편 (0) | 2021.10.12 |
하보경 시인 / 모과의, 모과에 의한, 모과를 위한 (0) | 2021.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