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랑 시인 / 어묵꼬치
퇴근길 포장마차 고집 센 대꼬챙이 둘둘 말린 어묵을 관통했다 주름 잡힌 바다가 작살에 꽂혔다
누군가의 허기를 메우려고 팔팔 저녁이 끓는다 하루의 중심을 통과한 사내들이 꼬부라진 지느러미를 잡고 놓지 않는다
재차 아가미를 잡아당기는 입들이 분주하다 산동 반도 뒤뜰 중국산 대나무 안시성에 버리고 간 죽창처럼 발밑에 빈 꼬챙이가 늘어난다
빠져나간 물고기 목청껏 휘파람이 가볍다
최태랑 시인 / 가위
두 개의 쇠붙이 엇눕혀 한 쌍인 가위 갈라놓는 본성에 길 드려졌다 늘 무엇인가 자르려고 입을 벌리는 가위 상반된 두 날이 서로 등을 비비는 순간 양편으로 나뉜 빛과 어둠, 양변의 길이만큼 상처가 깊다
자르지 못해 녹이 슨 습관 도박과 담배를 가위로 잘라볼까 숱한 맹세와 다짐만 예리한 가윗날에 잘려나갔다
가위가 선택한 어느 수반에는 푸른 피를 토하고 죽은 꽃들이 서 있고 사과나무는 상처 위에 꽃을 피운다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에 길들여진 차갑고 냉정한 가위
때로는 태반을 잘라 새로운 생명을 얻기도 한다
최태랑 시인 / 저녁 연기
외진 시골길을 걷는다 어느 집 굴뚝이 하늘을 당기고 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삭정이를 분지르는 늙은 손목이 있고 나뭇짐을 지고 온 등이 있을 것이다
밥이 끓고 언 발을 녹여줄 아랫목이 있고 등 다독여줄 어머니가 있고 밤새 나눌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저 집에 따뜻한 밥상이 있고 마주할 무릎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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