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화 시인 / 복서
비틀대며 여기까지 왔지만 많은 주먹을 맞았지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나 여기 서 있다! 심판도 관중도 내 편이 아니지만(야유가 차라리 내겐 힘이다) 수없는 터널을 지나 예까지 왔는데 누가 수건을 던지라 하느냐 마지막 라운드에 타월이라니? 비록 체력은 바닥났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말해보라 내 주먹이 허공만 가른 건 아니잖으냐 가끔은 카운터펀치도 날렸지 않느냐 그러니 내게도 박수를 보내다오 박수까진 몰라도 끝까지 지켜는 보아다오 여기서 흰 수건 던지면 누가 내 대신 링에 오르겠느냐 네가 아무리 주먹을 휘두르고 일방적 응원을 받아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나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네가 나를 이긴다고?) 좋아하지 마라 너의 손이 올라가기 전 나는 링을 내려갈 것이다 축하는 해주겠다 나를 이만큼 버티게 해준 링사이드의 특별관중과 모처럼의 찬스에서 나를 제지한 레퍼리에게도 목례는 하겠다 그러나 잊지 마라 네가 승자라면 나도 승자다!
박재화 시인 / 이름 부르기 3
징기스칸은 제 이름도 쓸 줄 몰랐다니 참말일까 하기야 이름은 남이 불러주는 것 해와 달과 신(神)까지도 남이 부르는 것!
박재화 시인 / 사람이 위안이다
살다 보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그런 날엔 혼자서 산엘 오른다 해거름까지 오른다
오르다 보면 작은 묏새무리 언덕을 넘나든다 그 서슬에 들찔레 흔들리고 개미떼 숨죽이는 것 보인다
그림자 없이 내려오는 숲속 순한 짐승들 어깨 비비는 소리 가득하여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립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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