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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희준 시인 / 7월 28일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5.

김희준 시인 / 7월 28일

 

 

아니래 자기야 내 귀에 비가 살고 패랭이꽃과 구상나무가 자라는 게

산타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니래

아무렴 몸에 새긴 날짜와 패랭이꽃이 입체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므로 허리 아래 사슴 문신에 새긴 녹각 있잖아 스스로를 찔러버리기도 한다는 말은 거짓이래

밀가루를 반죽하던 단칸방이 물렁해졌어 모서리만 보이는 네가 버겁다는 건 같은 말일까

단지 6개월 먼저 떠나온 곳이 너라거나 사라진 도시라거나 알고 싶은 게 아니었어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다가 창밖으로 우리를 버리는 게 당연하다는 거지

털모자와 양말을 신었던 건 모서리가 아파서라 해석해도 좋겠어 뾰족한 말을 주고받다가 웃기도 했던가

그러니까 자기야 몸이 밀가루가 된다는 말 퍼진 햇살을 잡아둔 단칸방에 많은 어제가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닌 거지

 

패랭이꽃이 그려진 식탁은 수제비를 먹기에 알맞은 곳 수제비를 먹으며 자기를 기다리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말

어떤 말은 아니라고 할 때 이해되는 것이 있지 그럴 땐 달을 깎는 거야 창밖으로 서로를 던져버리는 거야

구상나무에 걸어둔 추상적인 부정문 말이야 샴쌍둥이의 생략은 얼마나 많은 걸 비워두고 있을까

어쨌거나 여름은 자기를 기다리는 일

아니래 자기야 트리에 무엇도 걸지 않는 게 좋겠어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4월호 발표

 

 


 

김희준[1994. 9. 10 ~ 2020. 7. 24] 시인

1994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 국립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재학 중(현대문학전공)이었음. 2017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 2020년 아르코청년예술가 창작준비지원금 수혜. 유고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문학동네, 2020)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2020년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