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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반칠환 시인 / 바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

반칠환 시인 / 바람

 

 

저놈은 대단한 독서광 아니면

문맹이 틀림없다

열흘째 넘기지 못한 서적을

돈 세듯 넘겨놓고,

포플라 잎 팔만대장경을

일제히 뒤집어 놓은 채 달아난다

 

시집 <전쟁광 보호구역> 2012년 지혜사랑

 

 


 

 

반칠환 시인 / 팔자

 

 

나비는 날개가 젤루 무겁고

공룡은 다리가 젤루 무겁고

시인은 펜이 젤루 무겁고

건달은 빈 등이 젤루 무겁다

 

경이롭잖은가

저마다 가장 무거운 걸

젤루 잘 휘두르니

 

 


 

 

반칠환 시인 / 하나님 놀다가세요

 

 

하나님 거기서 화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오늘따라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들판은 파랑물이 들고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정 그렇다면 하나님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풀 뜯고 노는 염소들과 섞이세요

염소들의 살랑살랑 나부끼는 거룩한 수염이랑

살랑살랑 나부끼는 뿔이랑

옷 하얗게 입고

어쩌면 하나님 당신하고 하도 닮아서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놀다 가세요 뿔도 서로 부딪치세요.

 

 


 

반칠환 시인

1964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198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과 시선집 『누나야』 시평집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  『뉘도 모를 한때』, 꽃술 지렛대』 장편동화 『하늘궁전의 비밀』, 지킴이는 뭘 지키지?』 인터뷰집 『책, 세상을 훔치다』 등이 있음. 1999년 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 200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