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채 시인 / 삭제
시상(詩想)을 적은 메모 수백 편이 날아갔다 다음 카페 글 보관함을 실수로 삭제했다
완두콩 같은 새날이 날아가고 보도블록을 걷다가 구두굽이 빠지던 날이 날아갔다 동생만 보는 어머니의 눈과 몰래 대출받고 변명하는 남편의 입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딸의 가슴이 날아갔다 울릉도 밤바다 어화 등불 날아가고 미케 비치의 해돋이 산타모니카 잔교 바다사자 울음이 날아가고
한 우주가 날아갔다
더듬더듬 일어나 구름 한 컵 마신다 늦가을 공원이 축축하다
류인채 시인 / 자작나무
나무에게도 눈물이 있을까 그저 잎새가 노래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뿐인데 내 눈에는 끝없는 흐느낌처럼 보인다
커다란 눈마다 눈물 그렁그렁 죄를 고백할 때마다 몸은 하늘로 더 솟아오르고 몸빛은 하얗다
빽빽이 들어찬 회개의 숲
저 하얀 고백 위에서 새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운다 나무의 말을 주워섬기듯 들쥐가 나무의 발밑을 파고 있다
나도 한 그루의 나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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