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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명수 시인 / 낙타 별자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7.

심명수 시인 / 낙타 별자리

 

 

옹이, 혹은 의혹은

가려울 때마다 너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곳에 너를 묻었다

 

제 무덤을 등에 지고 가는 낙타처럼

반짝이는 여정

고행의 끝이란 한 생을 지고 갈 밥그릇

 

초암사 약수터

낙타가 샘가에 앉았다

멜랑꼴리한 등허리

환생의 껍데기에

치렁치렁 낙숫물 넘치는 소리

생글생글 이 빠진 소리

 

등이 시려

손가락으로 우주의 행렬을 짚어 가다 보면

너는 어느 별에서

한 번이라도 나와 마주칠 수 있을까

 

가려울 때마다 긁적이는

나의 아름다운 병

 

 


 

 

심명수 시인 / 그믐달

 

 

뚜껑은 열리고 밤은 아직 발효 중이다

 

밤의 항아리 속이 구리다고 속단하지 말자

지문을 찍어본 사람이면 알리라

판이하게 드러나는 음과 양

나는 그 음과 양의 어두운 항아리 속에 가라앉아 있다

한 여자가 침몰된 나를 한 바가지 떠간다

 

먹먹하다

날숨에서 피어나는 별들

별은 항아리 속 숨구멍

나는 무엇인가에 자꾸 익숙해지는 걸까

 

다시 한 여자 얼굴이 떴다

여자는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오곤 한다

지상에서 아직도 여자는 그 구간을 흐른다

여자여, 그만 뚜껑을 닫아주오

 

아, 나는 항아리 속에서 발효 중이다

피안을 위한 침잠

밤은 이제 뚜껑을 닫고

밤 물결 따라 침대가 노를 젓는다

 

 


 

심명수 시인

충남 금산에서 출생. 2010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상상인, 202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