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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연아 시인 / 나의 귀는 깊은 그늘로 덮여 있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6.

김연아 시인 / 나의 귀는 깊은 그늘로 덮여 있다

 

 

마침내 당신의 귀에 입 맞출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내 기원을 잃어버렸다

 

물고기와 해초가 찰랑거리는 바닷속에서

해그림자와 함께 흔들리듯

당신은 내 몸 위에 길게 엎드려

나의 심연을 맛보았지

 

폭풍우 치는 여름밤

혼탁한 물속에서 반짝이는 물고기처럼

당신은 나에게 왔어

 

나는 당신에게 없는

나를 압축하여 당신에게 건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일깨워줄 내 사랑이여, 나를 먹여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 안의 것을 원해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내게 보여줘

 

바닷물과 같은 습기를 가진 짐승,

우리가 헤엄치는 밤의 대기는

당신의 호흡을 내 입술로 옮겨놓았지

 

말로 가득한 나의 입술에

세 개의 귀가 내려왔어

당신의 우수가 그 안에서 흘러나와

나의 모세혈관까지 스며들었지

 

환상과 환멸 사이에서

나는 당신을 인용했어

나의 상상력은 무겁고

나는 나를 마구 뱉어냈어

 

방금 비밀집회에 다녀온 것처럼

나는 새로워졌고

초유의 맛을 알게 되었어

 

나는 세 개의 귀를 모아

우단 먼지 같은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작과

내 안에서 되풀이되는 끝 사이에서

 

무크 『청천문학』 2021년 발표

 

 


 

김연아 시인

함양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200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달의 기식자』(문예중앙, 2017)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