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시인 / 나의 귀는 깊은 그늘로 덮여 있다
마침내 당신의 귀에 입 맞출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내 기원을 잃어버렸다
물고기와 해초가 찰랑거리는 바닷속에서 해그림자와 함께 흔들리듯 당신은 내 몸 위에 길게 엎드려 나의 심연을 맛보았지
폭풍우 치는 여름밤 혼탁한 물속에서 반짝이는 물고기처럼 당신은 나에게 왔어
나는 당신에게 없는 나를 압축하여 당신에게 건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일깨워줄 내 사랑이여, 나를 먹여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 안의 것을 원해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내게 보여줘
바닷물과 같은 습기를 가진 짐승, 우리가 헤엄치는 밤의 대기는 당신의 호흡을 내 입술로 옮겨놓았지
말로 가득한 나의 입술에 세 개의 귀가 내려왔어 당신의 우수가 그 안에서 흘러나와 나의 모세혈관까지 스며들었지
환상과 환멸 사이에서 나는 당신을 인용했어 나의 상상력은 무겁고 나는 나를 마구 뱉어냈어
방금 비밀집회에 다녀온 것처럼 나는 새로워졌고 초유의 맛을 알게 되었어
나는 세 개의 귀를 모아 우단 먼지 같은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작과 내 안에서 되풀이되는 끝 사이에서
무크 『청천문학』 202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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