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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춘근 시인 / 대마리 이야기 1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5.

정춘근 시인 / 대마리 이야기 1

-서른 마지기 소문

 

 

"땅 서른 마지기를 준단다."

"그것도 공짜로 나눠 준단다."

 

긴가민가한 소문이

수복 지구를 떠돌았다.

사방 공사에서 돌아 온 아재들은

허황된 헛소리라 수군수군

사문안천에 빨래 나온 아낙들은

뜬소문이라고 소곤소곤

 

또, 땅 사기꾼들이 지어낸 말

이북 놈들이 퍼트린 유언비어라며

돌고 돌았지만

 

수복 지구 사람들에게는

말짱 거짓말이라도

간만에 가져 보는 꿈이었다

 

 


 

 

정춘근 시인 / 대마리 15

-민간인 지뢰 탐지기

 

 

개척에 앞장을 선 것은

지뢰를 탐지하는

민간인들이었다

 

값비싼 미제 라디오를 뜯어

부속품으로 본체를 꾸며

나무통에 넣어서 만든

허름한 지뢰 탐지기

 

선 하나는 리시버를 연결해서 귀에 꽂고

다른 선은 엉성한 매미채처럼 생긴 것에

끊어지지 않게 이어 놓은 뒤에

 

땅에다 이리저리 흔들다 보면

바늘 끝처럼 귀를 찌르는 진동으로

귀신같이 지뢰를 찾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탐지기

그 시대에 최첨단 지뢰 탐지기

 

이것을 그럴듯하게 허리에 찬

비무장 민간인들이

사람들 발목을 기다리고 있는

대인 지뢰밭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정춘근 시인 / 대마리 24

-첫 지뢰 사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첫 지뢰 사고는

초등학교 터 작업에서 일어났다

 

지뢰를 캐낸 곳은

빨간 줄로 표시를 해 놓아

안전한 지역이었는데

사고가 나려고 그랬는지

 

탐지 작업도 하지 않은 곳에

쳐 놓인 줄을 보고

마음 놓고 갔다가

아뿔싸, 지뢰가 터졌다

 

꽝하는 소리도 잠시

검은 연기가 온몸을 휘감고

풀썩 쓰러진 사람 얼굴은

검은 흑빛 피투성이었다

 

살점이 너덜너덜하고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허리끈을 풀어 조여 매고

군부대 지프차에 실려 가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

 

그날은 작업을 멈추고

텐트로 돌아와

아무 말도 못하고 술을 마셨다

안주도 변변치 않아

눈물을 찍어서 쓴 술을 마셨다

 

 


 

 

정춘근 시인 / 대마리 26

-지뢰 사고 보상금 0원

 

 

돌멩이보다

지뢰가 더 많은 땅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는 누구 책임일까

 

요즘 같으면 인권 단체들이 나서서

목소리 높여 거들어 주겠지만

당시에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지지리 복이 없어서

일어난 개인적 책임이었다

 

발목이 끊어진 사고 치료비

개인이 알아서 부담

더 이상 일을 못하는 손해

지뢰는 밟은 개인 책임

후유증 보상이고 위자료는

애초 들어 본적도 없는 땅

 

이런 사고가 발생해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했던 이유는

입주를 신청할 때

어떤 사고도 자부담이라는

지금의 신체 포기 각서보다 더 무서웠던

생명 포기 각서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마리에서는

대한민국은 없었고

스스로 알아서 지뢰밭을

개간을 해야 하는

불쌍한 개척민들만 있었다

 

 


 

 

정춘근 시인 / 대마리 31

-지푸라기 다리

 

 

지뢰 사고로 다리 잘려 죽은 친구를

그냥 장사를 지낼 수는 없어

의족을 만들어 초상을 치렀다

 

하늘 나라에 가서도

다리 병신 취급 받을 것 같아

지푸라기로 만든 다리를

그럴싸하게 달아매었다

 

짚풀 다리는 만들기 쉬워도

살점이 꺼멓게 말라붙었고

핏줄이 끊어진 실처럼 보이고

사람 썩는 냄새로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지푸라기 다리를 붙일 때

흐르는 땀 속에 섞였던 눈물을

누가 기억이나 할까

 

미처 감지 못한 두 눈빛이

무섭고 애처로워 다시 쓸어내려 주고

서둘러 나올 때

여보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절망을 그 누가 알고 있을까

 

 


 

정춘근 시인

1960년 강원도 철원 출생. 정춘근 시인은 1999년 <실천문학> 봄호를 통해 등단한 이래 <지뢰꽃> <수류탄 고기잡이> <북한 사투리 장시집> <황해> 등 3권의 시집을 발간. 민족문학작가협회 강원지부 이사. 현재 철원에서 시창작 및 글짓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