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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우덕 시인 / 강화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5.

장우덕 시인 / 강화

 

 

나는 쇄국을 선언한다

칼날 천 장을 지닌 꽃의 이름 같다

와 닿는 것들을 붉게 물들이며

강화 앞바다에 낙조가 든다

 

이국의 함대가 개항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

먼 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라 마르셰예즈

밭고랑을 적시지 말아달라는 청은 묵살되었다

심야에도 혁명은 배달 가능하다

대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는 다시 전의를 가다듬을 수밖에

 

텃밭의 근대는 밤에도 푸르고

기회를 엿보던 애벌레는 둥글게 몸을 만다

내게 군대보다 노래 한 소절 절실한데

하나 둘 쓰러져가는 역전의 용사들

그들의 이갈이는 나의 국가(國歌)가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내일은 느지막이 일어나

바다를 엿보러 돈대로 가자

총안(銃眼) 가득 넘실거리는 푸름으로 우리는 괴롭겠지만

 

갉아 먹힌 잎사귀 구멍에 햇빛이 집결하고 있다

이국의 함대를 불태우러 가자

잔잔한 바다 앞에서 말아 쥐는 주먹

안으로 파고 들수록 국경은 단단해진다

 

 


 

장우덕 시인

1984년 서울에서 출생. 장안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8년 《서정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