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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경덕 시인 / 아직도 둠벙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6.

마경덕 시인 / 아직도 둠벙

 

 

잠잘 때도 둠벙의 지느러미는 자라고 있었다

 

물풀 사이로 뛰어든 돌멩이에 맞아

물의 힘살이 오그라들고

파닥파닥 물속에서 꽃이 피었다

 

논둑길 옆 둠벙의 뿌리는 구지레한 물풀과 자잘한 금붕어들

발소리에 속아

내뱉은 물방울을 물고 사라지던 그 허전한 뒷모습들

 

빈집처럼 수면이 닫히면

곁에 앉은 냉이꽃 모가지들 똑똑 따서 던졌다

 

저것들 무얼 먹고 사나

 

하굣길 논둑에 앉아

도시락에 남겨둔 식은밥 한술 던져주면

밥풀때기에 요동치던 둠벙의 꼬리가 칸나처럼 붉었다

 

물 위를 걷는 바람의 발끝이 언뜻언뜻 비치는 날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어주던 서늘한 물의 손

 

그때 알 수 없는 설렘이 물풀을 흔들고

물비린내에 부푼 오후의 물빛이 가라앉던 둠벙

 

쌀붕어 한 마리 몰래 넣어준,

 

오래전 사라진

둠벙의 붉은 꽃을 나는 물이끼처럼 붙잡고 있다

 

《상상인》 2021. 1월호

 

 


 

 

마경덕 시인 / 조개는 입이 무겁네

 

 

조개는 나이를 등에 붙이고 다니네. 등딱지에 너울너울 물이랑이 앉아 한 겹, 두 겹, 주름이 되었네. 끊임없는 파도가 조개를 키웠네.

 

저 조개, 무릎이 헐도록 뻘밭을 기었네. 어딜 가나 진창이네. 평생 몸 안에 갇혀 짜디짠 눈물을 삼켰네. 조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네.

 

조개장수 아줌마. 쪼그려 앉아 조개를 까네. 날카로운 칼날이 앙다문 입을 여는 순간 찍, 조개가 마지막 눈물을 쏟네.

 

"지랄한다, 이놈아가 오줌빨도 쎄네."

 

조개 까는 아줌마 쓱, 손등으로 얼굴을 닦네. 조개껍데기 수북하네.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신발論』이 당선되다.시집으로 『신발論』(문학의전당,2005) 『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이 있다. 북한강문학상 수상. 2017년 시집‘사물의 입’세종나눔도서 선정. 현재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AK아카데미,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