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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세훈 시인 / 몸의 중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6.

정세훈 시인 / 몸의 중심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정세훈 시인 / 그해 첫눈

 

 

펄― 펄―

초겨울 잿빛 하늘 아래

그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는 매매계약서에

서명날인하는 부동산 중개업소

창밖에 땅거미가 깔리고

 

“첫눈치고 많이도 오네”

“포근하구먼!”

“함박눈이네요”

“아름다워요”

 

중개업자 박씨가

집을 파는 사내가

그의 아내가

첫눈에 마냥 들떠 있었다

 

그 첫눈 속에,

어느 해 맑은 이른 봄날

햇빛이

너무 밝고 따스하여

 

문간 셋방 쪽문 앞에 나앉아

속절없이

남몰래 울었던 눈물이

수북수북 묻히고 있었다

 

『동면』 (도서출판b 2021)

 

 


 

정세훈 시인

195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1990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