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시인 / 마린보이
전 지금 깊은 물속에서 마린보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는 너울타기 연습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배가 뒤집히던 순간이 떠올라 옴짝달싹 못했거든요 엄마를 부르며 소리치는 것도 아주 잠시였어요 순식간에 너무나도 고요한 무덤이 되어버렸죠 여기저기 물방울만 구르다 금세 멈추고 말았어요
마흔셋에 홀로 되신 울엄만 아직도 물가에서 먼 하늘만 보고 계시네요 우린 왜 사랑한단 말도 못하며 살았을까요 날마다 오만상에 골 부리는 녀석을 말없이 안아 주던 엄마! 당신의 소원대로 판사가 되어 멋지게 안기려고 했는데 속상해요 미안해요
이 넓은 바다는 이제 내 집이 되었네요 그새 팔 다리가 지느러미로 변했는지 별별 곳을 다 헤집고 다닌답니다 바다라면 진저리치는 엄마라 말은 못했지만 저도 아빠처럼 항해사가 되고 싶었어요 배 없이도 바다를 누비는 항해사 제 꿈을 이뤘으니 그만 우세요 저도 아빠도 모두 잊으세요
자야할 시간이래요 볼락도 가시복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는데 전 아직 눈부터 스르륵 감겨요 아참 내일은 산호랜드로 소풍가는 날이에요 김밥에 햄 두 개씩 꼭 넣어주세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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