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 시인 / 어머니의 처녀 적
어머니는 처녀 적부터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누에가 걸쳤던 새하얀 비단실 뽑아 올리면 펄펄 끓는 물 위에 기름 번지르르한 노오란 번데기가 다투어 둥둥 떠올랐다
해는 왜 그리 길고 배는 왜 그리 고픈가 현장 감독의 눈을 피해 졸고 졸면서 번데기로 배를 채웠다
힘없어 애 못 낳는 여자 한 말만 먹으면 애를 낳고 만다는 그 번데기 때문인지
열일곱에 서른다섯 노총각 스님에게 업혀 와서 칠 남매 낳으신 뒤에도 어머님은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6ㆍ25가 끝난 한참 후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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