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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태일 시인 / 어머니의 처녀 적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8.

조태일 시인 / 어머니의 처녀 적

 

 

어머니는 처녀 적부터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누에가 걸쳤던 새하얀 비단실 뽑아 올리면

펄펄 끓는 물 위에

기름 번지르르한 노오란 번데기가

다투어 둥둥 떠올랐다

 

해는 왜 그리 길고

배는 왜 그리 고픈가

현장 감독의 눈을 피해 졸고

졸면서 번데기로 배를 채웠다

 

힘없어 애 못 낳는 여자

한 말만 먹으면 애를 낳고 만다는

그 번데기 때문인지

 

열일곱에 서른다섯 노총각 스님에게

업혀 와서 칠 남매 낳으신 뒤에도

어머님은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6ㆍ25가 끝난 한참 후에까지

 

 


 

조태일(趙泰一. 1941년-1999년) 시인

전남 곡성 출생.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를 발표하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 '저항시인'으로 불림.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경희대 대학원 문학 석사학위(1985), 박사학위(1991).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4년, 시 〈아침선박〉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 1989년 이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 1994~1999 예술대학장을 역임. 시집 〈식칼론〉 〈국토〉, 〈가거도〉, 〈연가〉,등을 펴냄. 제1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 1992년 편운문학상, 1995년 만해문학상을 받음.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