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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해림 시인 / 시멘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8.

강해림 시인 / 시멘트

 

 

좌익도 우익도 아닌 것이 돌처럼 서서히 굳어간다 침묵이 더 큰 침묵으로 덮어버리고 견딘다 이 숨쉬기조차 끊어버린,

 

내 안의 무수한 내가 반죽되고 결합작용을 하느라 벌이는 사투를, 불화의 힘으로 고립된다 외롭지 않다

 

가슴에 철로 된 뼈를 박고 나는 꿈꾼다 불임의 땅을, 내 자궁 속 무덤에 태(胎)를 묻은, 위대한 건설을

 

나라는 극단을 위해 극단을 버린 내 비겁함을, 국경 없는 국경을 넘어가는

 

조작된 유전자처럼 내 안에 들어오면 감쪽같이 은폐된다 암매장된다 패륜의 저 뻔뻔한 얼굴도 살인의 추억도

 

불나방 같은 네온 불빛을 불러들이기 위해 밤 화장을 하고 더욱 요염해진다 도시는, 회색분자들이 장악한

 

사막에 홀로 피는 꽃처럼 오래 견딘 만큼 강렬해진 갈증과 독기로 제 육체에 새기는 균열의 문장을

 

내 데스마스크의 창백한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잿빛 글씨들

 

월간 『현대시』 2016년 5월호 발표

 


 

강해림 시인

1954년 대구에서 출생. 한양대 국문과 수료. 1991년 《현대시》와 《민족과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구름사원』(한국문연, 2001)과 『환한 폐가』(한국문연, 2006)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