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림 시인 / 시멘트
좌익도 우익도 아닌 것이 돌처럼 서서히 굳어간다 침묵이 더 큰 침묵으로 덮어버리고 견딘다 이 숨쉬기조차 끊어버린,
내 안의 무수한 내가 반죽되고 결합작용을 하느라 벌이는 사투를, 불화의 힘으로 고립된다 외롭지 않다
가슴에 철로 된 뼈를 박고 나는 꿈꾼다 불임의 땅을, 내 자궁 속 무덤에 태(胎)를 묻은, 위대한 건설을
나라는 극단을 위해 극단을 버린 내 비겁함을, 국경 없는 국경을 넘어가는
조작된 유전자처럼 내 안에 들어오면 감쪽같이 은폐된다 암매장된다 패륜의 저 뻔뻔한 얼굴도 살인의 추억도
불나방 같은 네온 불빛을 불러들이기 위해 밤 화장을 하고 더욱 요염해진다 도시는, 회색분자들이 장악한
사막에 홀로 피는 꽃처럼 오래 견딘 만큼 강렬해진 갈증과 독기로 제 육체에 새기는 균열의 문장을
내 데스마스크의 창백한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잿빛 글씨들
월간 『현대시』 2016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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