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시인 / 뻐꾹새
늙은 섬진강도 힘에 부치는지 물소리를 낸다 장대비와 제비꽃이 강가에 나란히 앉아 눈앞에서 뱅뱅 도는 풀 하나 건져 낸다 풀뿌리에 묻어 있는 뻐꾹새소리 절도 사라지고 승도 사라지고 새벽만 남아 있던 화엄사 꽉 차 터질 듯한 화엄의 무덤을 한 모퉁이 툭 치고 날아간 그 새벽 뻐꾹새 소리 장맛비에 쓸려 구례로 돌아왔을까 강물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장마가 깊어갈수록 잠은 점점 더 무거워져 오고 이 빗발 따라 어디까지 떠돌다 돌아왔을까 새벽꿈을 깨고 들이치는 번개 더 고요한 저 뻐꾹새 소리
-임지훈,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 미네르바, 2017,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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