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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지훈 시인 / 뻐꾹새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8.

임지훈 시인 / 뻐꾹새

 

 

늙은 섬진강도 힘에 부치는지

물소리를 낸다

장대비와 제비꽃이 강가에 나란히 앉아

눈앞에서 뱅뱅 도는 풀 하나 건져 낸다

풀뿌리에 묻어 있는 뻐꾹새소리

절도 사라지고 승도 사라지고

새벽만 남아 있던 화엄사

꽉 차 터질 듯한 화엄의 무덤을

한 모퉁이 툭 치고 날아간

그 새벽 뻐꾹새 소리

장맛비에 쓸려 구례로 돌아왔을까

강물에 찍힌 무수한 발자국

장마가 깊어갈수록 잠은 점점 더 무거워져 오고

이 빗발 따라 어디까지 떠돌다 돌아왔을까

새벽꿈을 깨고

들이치는 번개

더 고요한 저 뻐꾹새 소리

 

-임지훈,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 미네르바,  2017,  p.19.

 

 


 

임지훈 시인

부산에서 태어남. 동아대 졸업. 동아대 신문에 소설 연재. 동아문학상에 시와 수필 당선. 2006년《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와 사진시집 『빛과 어둠의 정치』가 있음. 2018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