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복효근 시인 / 건전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4.

복효근 시인 / 건전지

 

 

 건전지는 극과 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물려있다 애愛와 증憎 삶과 죽음의 자웅동체이다 어느 것 하나로는 심장은 뛰지 않는다 내 사랑도 죽이고 싶을 만큼의 똑같은 전압이 아니었다면 너와 나와의 온몸에 저릿저릿 피를 흐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몸에 꼭 맞는 관 속에 누워 죽어가면서 극과 극에서 불러내는 저 불꽃

 

 


 

 

복효근 시인 / 콩나물에 대한 예의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복효근(卜孝根) 시인

1962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등이 있음.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2015. 제2회 신석정문학상. 대강중학교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