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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도현 시인 / 모기장 동물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5.

안도현 시인 / 모기장 동물원

 

 

나방이 왔다 풍뎅이가 왔다 매미가 왔다

형광등 불빛 따라 와서 모기장 바깥에 붙어있다

오지 말라고 모기장을 쳐놓으니까 젠장, 아주 가까이 와서

나를 내려다 보며 읽고 있다

 

영락없이 모기장 동물원에 갇힌

나는 한 마리의 슬픈 포유류

 

책을 덮고 생각 중이다

저 곤충 손님들에게는 내가

모기장 안쪽에 있는가

바깥 쪽에 있는가

 

애지 2004년 여름호

 

 


 

 

안도현 시인 / 튀밥에 대하여

 

 

변두리 공터 부근

적막이며 개똥무더기를 동무 삼아 지나가다 보면

난데없이 옆구리를 치는 뜨거운

튀밥 냄새 만날 때 있지

그 짓 하다 들킨 똥개처럼 놀라 돌아보면

망할놈의 튀밥장수, 망하기는커녕

한 이십 년 전부터 그저 그래 왔다는 듯이

뭉개뭉개 단내 나는 김을 피워올리고

생각나지, 햇볕처럼 하얀 튀밥을

하나라도 더 주워 먹으려고 우르르 몰리던

그때, 우리는 영락없는 송사리떼였지

흑백사진 속으로 60년대며 70년대 다 들여보내고

세상에 뛰쳐나온 우리들

풍문으로 듣고 있지, 지금 누구는

나무를 타고 오른다는 가물치가 되었다 하고

누구는 팔뚝만한 메기가 되어 진흙탕에서 놀고

또 누구는 모래무지 되고 붕어도 잉어도 되었다는데

삶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제대로

나는 가고 있는지, 가령

쌀 한 됫박에 감미료 조금 넣고

한없이 돌리다가 어느 순간 뻥, 튀밥을 한 자루나 만들어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오지는 않았는지

튀밥으로 배 채우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입안에는 혓바늘이 각성처럼 돋지

안 먹겠다고, 저녁밥 안 먹겠다고 떼쓰다

어머니한테 혼나고 매만 맞는 거지

 

시집 - 외롭고 높고 쓸쓸한 (1994년 문학동네)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군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낙동강〉으로 등단. 1984년 동아일보 '서울로 가는 전봉준' 신춘문예 당선. 장수산서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부교수.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1984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1996 시와 시학상 젊은시인상. 1998 제1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2002 제1회 노작문학상. 2002 제10회 모악문학상. 2005 제12회 이수문학상. 2007 제2회 윤동주 문학상 문학부문.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2012 임화문학예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