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환 시인 / 다도해
많은 섬에 물떼새의 잦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부리자국이 찍혀 있기도 한다
깨졌거나, 금갔거나, 귀퉁이가 떨어져나갔거나, 구멍이 뚫렸거나, 파 먹히고 껍질만 남은 뭇 섬들을 죄다 추려내서 내버리고도
썰물에, 나는 물을 따라가며 주워 담으면 금방 망태기가 차는,
뻘바닥에 널린 고막조개만큼이나 수많은 작고 여문 섬들이 흩어져 있다
큰사리 물에 떠내려간 몇 섬은 몇 해째 소식이 없고 두어 섬은 수평선 너머에 잠겨 있기도 하지만
이곳에 오면 밟히는 것이 모두 섬이다
<현대시학> 2004년 7월호
위선환 시인 / 동행
바람 끝이 차고 쓸쓸해지면서 세상이 날마다 마른다 어느 날은 사지를 다 말린 나무들이 먼지바람 쓸리는 들판 너머로 걸어서 떠날 것이고 갈색 잎사귀들 날리겠지만
등 기대고 서서 오래 기다리거나 가슴팍을 밀며 나무 속으로 파고들던 옛일이 그렇듯이 지금은 나무들이 걸어가는 뒷길을 늦도록 따라 걷는 것도 이 가을을 조용하게 견뎌내는 노릇일 텐데
어쩔 것인가 저기, 나무 한 그루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제 나는 걸어가서 그이의 빈 겨드랑이를 부축할 것이고 그러면 그이는 굽고 적막한 몸을 기울여서 내게 기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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