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제김영 시인 / 될 대로 된다는 것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5.

김제김영 시인 / 될 대로 된다는 것

 

 

될 대로 되라는 말

참 무책임한 말 같지만

지구의 모든 실개천과 그보다 더 큰 강들과

천년을 넘게 걷고 있는 옛길들,

가을걷이 끝에 꼭 입 닫고 있던 곡식들이

몇십 배, 몇백 배로 불어나는 일 그거,

알고 보면 다 될 대로 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힘의 순차를 세상은 힘겨운 듯하지만

불가역 앞에선 오히려 편안해진다

될 대로 되는 일은 순리의 첫 번째 말

욕심의 반대말쯤 되지 않을까

코카콜라 병이 용케도 비탈을 찾아

한 번은 반드시 굴러보는 일과

평생을 묵언하던 코젤 다크가 정수리를 따는 순간

한 번은 반드시 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될 대로 되는 일이다

냉혈동물인 방울뱀이 사막의 햇빛 아래

똬리를 트는 일도, 다 익은 열매가

끝내 땅으로 뛰어 내리는 것도

될 대로 되는

되고 있는 일이다

 

아무 힘도 없다고 하지만

찾아보면 이 순리에는 될 대로 되는 힘이 있다

온통 남의 힘을 뺏어 내 힘에 보탤 때

오직 내 편인 힘

나와 순리 사이를 돌고 있는

톱니바퀴 같은 내 힘이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김제김영 시인

1958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96년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작품 활동. 저서로는 시집으로 『다시 길눈 뜨다』, 『나비편지』, 『수평에 들다』와 산문집 『뜬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가요, 어리광』이 있음.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 전북시인협회장, 김제문인협회장, 전북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