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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다솜 시인 / 상처와 사막에 관한 에테르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8.

강다솜 시인 / 상처와 사막에 관한 에테르

 

 

 고비 사막을 건너던

 어느 시인의 여행기를 읽다가

 책장에 손을 베었다

 

 상처 속 사막을 횡단하던 도중 여자를 만났다 하늘이 붉은 저녁, 종아리부터 사막의 일부가 되어가는 여자는 당장으로 무릎을 튕겨 앞으로 나아갈 듯 아슬아슬하게 정지해 있었다 머리카락이 아직도 싱싱한 여자, 조금도 시들지 못한 선인장꽃의 모가지가 뚝 뚝 떨어지며 모래 위로 구르던, 한낮

 

 사막을 건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듣게 된다 이방인을 경계하느라 전갈과 선인장이 수런거리며 자라나는 소리, 별들이 뾰족한 발로 하늘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것들에 대하여 이 사막에 없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와,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생의 감각이 청각인 것처럼

 

 비가 내리자 사막에 수많은 귀가 생겨났다 여자의 남은 상반신은 비를 맞으면서 서서히 사막으로 스며들고, 그녀의 땀과 혈액과 눈물도 비에 녹아들어 갔다 붉은 선인장꽃들은 그녀가 사막이 되어가는 순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이곳의 마지막 소리예요, 남은 목소리가 순수한 고통으로만 귓가에 전해져 왔다

 

 상처는 소금기를 한가득 품고 거대한 무덤처럼 열려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강다솜 시인

1991년 서울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2021년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