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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 / 나를 지우고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오세영 시인 / 봄날
사립문 열어둔 채 주인은 어디 갔나 산기슭 외딴 마을 텅 빈 오두막집 널어 논 흰 빨래들만 봄 햇살을 즐긴다.
추위 물러가자 주인은 마실 가고 한 그루 벚나무만 덩그란히 꽃 폈는데 뒷산의 뻐꾹새 울음 마당 가득 쌓인다.
오세영 시인 / 저물녘
울타리를 타고 올라 시들은 저 나팔꽃 온종일 귀를 열고 무슨 소식 기다렸나 영(嶺) 너머 초록별 하나 돋아나는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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