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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세영 시인 / 나를 지우고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8.

오세영 시인 / 나를 지우고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오세영 시인 / 봄날

 

 

사립문 열어둔 채 주인은 어디 갔나

산기슭 외딴 마을 텅 빈 오두막집

널어 논 흰 빨래들만 봄 햇살을 즐긴다.  

 

추위 물러가자 주인은 마실 가고

한 그루 벚나무만 덩그란히 꽃 폈는데

뒷산의 뻐꾹새 울음 마당 가득 쌓인다.

 

 


 

 

오세영 시인 / 저물녘

 

 

울타리를 타고 올라 시들은 저 나팔꽃

온종일 귀를 열고 무슨 소식 기다렸나

영(嶺) 너머 초록별 하나 돋아나는 인기척

 

 


 

오세영 시인

1942년 전라남도 영광(靈光)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 同 대학 대학원서 석사학위및 문학박사학위 받음. 1968년 《현대문학》에 <잠깨는 추상>이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 충남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서울대학교에서 현대문학(현대시)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한국현대문학을 강의. 시집으로 『시간의 뗏목』,『봄은 전쟁처럼』, 『문열어라 하늘아』, 『바람의 그림자』 등과 시선집 『잠들지 못하는 건 사랑이다』 등이 있음. 한국시학회장,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역임. 녹원문학상 평론부문(1984), 소월시문학상(1986), 정지용문학상(1992), 공초문학상(1999), 만해상 문학부문 대상(2000), 현대불교문학상(2009)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