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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로 시인 / 두레박
어릴 적 서울 통의동에 있는 우물은 깊고 어둠이 가득 고여 있었다 두레박을 던지면 젖은 밧줄은 긴장한 어둠의 무게로 팽팽했다 길어 올린 두레박엔 하늘이 철철 넘쳐서 맑게 부서졌다 두레박에 입을 대고 마시면 시장끼에 말랐던 뱃속에서 하늘이 출렁거렸다
세월 지나 기억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진다 두레박이 까마득히 떨어지고 끊어진 밧줄 끝에서 허전한 손아귀가 목마르다 두레박은 이제 올라오지 않는다 허리를 구부리고 사막의 냄새가 캄캄한 우물 속을 헤매듯이 내려다본다 바닥에 물고기 형상의 뼈가 누워있다
윤강로 시인 / 날파리를 보면서
날파리 한 마리가 실내를 휘젓고 있다. 소리 없는 비행에 나는 교란된다. 언제나 그랬었다. 은밀한 칼이 되어 너를 본다. 이 살기는 무엇인가. 격추하라. 나는 소리없는 교란에 언제나 흔들렸다. 나의 평화는 잘 흔들린다. 적의의 시선으로 날파리를 추적하다가 너의 실내에서 떠도는 나의 소리 없음과 만난다. 너는 눈을 감고 있다. 강한 자는 비행을 즐긴다. 교란을 즐긴다. 너는 어쩔 수없구나. 너의 실내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나와 만났다. 격추되었다. 내가.
고가 도로 밑에 몇 마리의 비둘기와 진하게 핀 장미와 자동차 행렬의 소음이 살고 있다.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내가 살고 있다. 언제나 그랬다. 무의미의 풍경에 치가 떨릴 때도 있었다. 날파리. 살아있는 건 모두 사건이다.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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