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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동백숲을 사들이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2.

김밝은 시인 / 동백숲을 사들이다

 

 

여기저기 해찰하다 온 동백꽃이

속세의 얼굴을 느껴보려 기척 하는 날

 

산문(山門) 입구 카페

커피 대신 겨우 찾아 내놓은 탁주 두어 병

 

까불대는 입 밖으로 내달리는

아찔한 말[言]들을 추스르다

 

치맛단 가볍게 들어 올리는 동백을

덥석 끌어안기 부끄러웠지만, 오매

 

모두들 눈독 들인 선운사 동백숲이

탁주 두어 병에 내 차지가 되었다

 

눈썹달도 헝클어진 머릿결로

신음하며 곁에 주저앉던 밤이었다

 

 


 

 

김밝은 시인 / 사이코메트리*

 

 

냄새나는 하루를 쏟아놓고 가을을 흔드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던 문장들이 터벅터벅 다가오는 날이지 열심히 골똘해지는 중이지

 

따뜻한 기척에도 추적할 수 없는 손금이 있어서 가끔은 부질없는 발길이 가슴에 턱 자리 잡기도 하지 더 이상 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름에 손만 얹으면 전생의 전생까지 환하게 읽히는 순간이 올지 모르지 아슴푸레한 시절을 들여다보면 그늘의 장막 아래서 당신은 시를 쓰고 나는 그저 노래나 한 뼘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허공을 더듬으며 추락하는 나뭇잎처럼 울고 싶을 때도 당신 이름에 이마를 얹지는 않지, 않지가 않기가 되기도 하지 가위눌리는 밤은 계속될지도 모르지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며 입꼬리 살짝 올라가던 풍경만 꼭 움켜쥐고,

 

*사물에 손을 대어 그 물건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내는 일종의 초능력

 

 


 

김밝은 시인

한국방송대학교 교육과 졸업. 2013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 『술의 미학』 『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