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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시인 / 언뜻,
천변에 앉아 초록을 캐요. 쑥향을 뜯어요.
쑥향,
원시의 동굴에서 몸 바꿔 입은 여자의 냄새
그대와 내가 서로의 몸속에 심어놓은 냄새
마늘과 어우려져 깊이 배어 있는 사랑의 독소
언뜻, 보았지요.
몇 생애 전의 물가에서 아기 안은 여자와 불 피우는 남자,
돌아갈 수 없는
그 동굴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당신을 놓지 못하는 이유
이선균 시인 / 생이 가래
교실 창가 어항에 떠 있는 생이가래. 이 물풀의 어원을 알아내지 못했다.
해임 사유 우거진 채용 계약서를 해마다 갈아엎는 나는 일년초 생이가래. 가라면 가야 하는 나 생이, 가래, 라는 철학적 해석에 무릎 꿇는다.
언제 해임될지 모르는 이 거대한 어항에서 근근이 부유하는 나 또한 생이가래. 생이, 갈래, 라는 가슴 아픈 해석에 그만, 엎질러진다.
물풀도 목이 말라 파랗게 봄을 탄다.
『언뜻,』, 이선균, 천년의 시작,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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