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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선균 시인 / 언뜻,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5. 4.

이선균 시인 / 언뜻,

 

 

천변에 앉아 초록을 캐요. 쑥향을 뜯어요.

 

쑥향,

 

원시의 동굴에서 몸 바꿔 입은 여자의 냄새

 

그대와 내가 서로의 몸속에 심어놓은 냄새

 

마늘과 어우려져 깊이 배어 있는 사랑의 독소

 

언뜻, 보았지요.

 

몇 생애 전의 물가에서 아기 안은 여자와 불 피우는 남자,

 

돌아갈 수 없는

 

그 동굴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당신을 놓지 못하는 이유

 

 


 

 

이선균 시인 / 생이 가래

 

 

교실 창가 어항에 떠 있는 생이가래.

이 물풀의 어원을 알아내지 못했다.

 

해임 사유 우거진 채용 계약서를

해마다 갈아엎는 나는

일년초 생이가래.

가라면 가야 하는 나

생이, 가래,

라는 철학적 해석에 무릎 꿇는다.

 

언제 해임될지 모르는

이 거대한 어항에서 근근이 부유하는

나 또한 생이가래.

생이, 갈래,

라는 가슴 아픈 해석에

그만, 엎질러진다.

 

물풀도 목이 말라 파랗게 봄을 탄다.

 

『언뜻,』, 이선균, 천년의 시작, 2016년

 

 


 

이선균 시인

1961년 경기도 부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졸업. 2010년 《시작》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첫 시집 <언뜻>(천년의시작, 2016)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