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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6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수상작 김이솝 시인 / 버드나무 수목장
조카가 키우던 노란 잉꼬가 죽었다. 죽은 잉꼬를 버드나무 물가로 데려갔다. 슬픈 무덤이 만들어지고 아이의 눈물 속으로 새떼들이 날아왔다. 애기똥풀을 꺾어 무덤 위에 꽂아주자 버드나무들이 긴 조문행렬로 출렁였다. 먼 산 타종이 울려오고 잉잉대는 새들의 찬송. 물결무늬 경전을 읽는 햇빛 아래 물 한 컵과 좁쌀을 뿌려주었다. 실버들 아래 모인 새들에게도 젯밥을 나눠주는 아이. 능청능청 휘어지는 그늘이 슬픈 동화의 한 때를 견디고 있었다. 나비가 잠시 문상을 오고 아이의 눈물 자국 위로 긴 무지개가 흔들렸다. 버드나무 아래 오롯한 조막손, 아직 경계 없는 손금을 펼치며 내 눈물도 몇 방울 훔쳐보았으리. 죽은 새를 슬퍼하지 마라 버드나무 건너편 장다리 꽃밭을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 항아리 빛 저린 슬픔을 배우기 전 세상은 빛나고 봄은 너의 무지개란다.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이솝 시인 / 대봉
파르티잔들이 노모의 흐린 눈에 가을을 찔러 넣는다 턱밑에 은빛 강물을 가두고 은어 떼를 몰고 간다
쿵! 폭발하는 나무들.
온통 달거리 중인 대봉 밭에 감잎 진다
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 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
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 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삽을 놓고 우는 섬진강변,
귀를 묻고 돌아오는 저녁.
김이솝 시인 / 적국의 장미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슬리퍼를 끌며, 안녕? 들리지 않는 네 목소리 안개, 골목, 어둠
사라지기 위해 오는 밤 붉어지기 위해 오는 밤
나는 네 혐의를 존중해 물증 없는 사물은 유죄지
한동안 연락을 끊겠습니다 적국에 가 있겠습니다
안개는 풍경에 수갑을 채우고 갑자기 침울해지네요 어둠 속에서 첨벙첨벙, 꽃잎에 끌려가네요 내 혐의에 물증이 너무 많아 오늘은 외롭겠군요
미안합니다. 여기는 적국입니다
셔터를 내리던 자의 목덜미로 핑그르르 꽃잎이 떨어지네요 흰 이빨을 열며 안개가 받아먹네요 당신의 죄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적국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미안합니다. 여기는 적국의 골목입니다
안개를 잠그지 않아 똑 똑 똑 빗물이 지네요 담장 밖에선 당신의 얼굴을 증거인멸 하지 않겠습니다 도용하지 않겠습니다
첨벙첨벙, 들리지 않는 네 목소리
안녕?
여기는 적국의 적국입니다
김이솝 시인 / 출사 出寫
페블비치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39번가 부두에서 금문교까지
베이 브리지와 바다 갈매기와 함께, 찰칵
엉클톰스 캐빈의 주인은 백인 햄버거를 먹고 있는 노숙의 흑인들
재즈와 힙팝과 금문교와 원탁을 배경으로, 찰칵
바람 냄새 가득한 침엽수림 태평양은 출렁이고
호텔 하우스키퍼는 한국 여인 여인의 숲과 바다와 9홀을 돌아 나오며, 찰칵
젖은 불빛의 차창 밖 한강 뒤란을 바라보는 시간은 여기서 멀고
다리 아래 낚싯대를 던져 놓고 방울소리를 기다리는 노인들
영등포역 커피숍 앞
한 개비의 담배를 나눠 피고 있는 노숙인들을 바라보며 비포더 던 *을 듣고 있는 지금
*엉클톰스 캐빈 : 39번가 부두에 있는 햄버거집. *비포더 던(Before The Lawn) : 1990년 발표된 Judas Priest의 히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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